파나소닉 AE-700 프로젝터

주문해놓고 기다리던 파나소닉 PT-AE700 프로젝터를 받아서 설치했다. 다행히 예전 프로젝터(NEC VT-440)를 천정에 달기 위해 사용하던 브래킷은 그럭 저럭 맞아서 쉽게 고정할 수 있었다. 케이블은 조금 문제가 있었는데, VT-440은 컴퓨터의 RGB 입력이나 DVD의 컴포넌트 (YUV) 입력 모두 D-SUB 단자를 통해 입력, 자동 판별하기 때문에 DVD의 컴포넌트 출력을 D-SUB/5 RCA 컨버터를 사용, D-SUB 연장 케이블을 사용해서 프로젝터에 연결했었는데, AE700은 YUV 컴포넌트를 D-SUB에 입력하면 안되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며칠동안은 S-Video로 보다가 컴포넌트 케이블을 구해서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과연 기대했던 대로 와이드 화면을 90인치 스크린에 꽉채워 보니 좀 더 극장 같은 분위기가 나고 화면도 볼 만 했다. 한가지 문제는 바빌론 5와 같이 화면 품질이 낮은 DVD의 경우 화질이 나쁜 것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는 점. 하지만 화면 품질이 좋은 DVD의 경우엔 정말 좋은 화면을 보여주는데 예를 들어 수퍼비트 버전의 할로우맨을 보니 HD가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전 프로젝터에선 없었던 한가지 문제가 보였다. The Day After Tomorrow의 시작하는 부분에 남극 빙산이 화면을 꽉 채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빙산의 흰 부분에 세로줄이 보이는 것이었다. Projector Central의 AE-700 리뷰에서 언급했던 “vertical banding"이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리뷰에선 vertical banding이 간혹 보이긴 하지만 별 문제되지 않는 정도라고 했는데, The Day After Tomorrow의 빙산 장면에선 꽤 눈에 거슬릴 정도로 나타났다.

첨엔 이게 프로젝터 내부의 업스케일러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닐까, 나중에 업스케일 내장된 DVD 플레이어로 바꾸면 해결되려니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엔 좀 찜찜하고 vertical banding이 뭔지 궁금하기도 해서 좀 찾아봤다. 이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 많은 LCD 프로젝터에 vertical banding 현상이 있지만 특히 일부 기종이 문제가 되는데, 그 중 한가지가 산요의 Z-2이고 이에 대한 많은 글들이 있었다. * 입력 신호(컴포넌트, DVI등)나 해상도에 따른 차이는 없고, LCD 패널 자체의 문제로서 LCD 패널에 인가되는 전압을 조정하면 문제가 해결됨. 이 전압은 flickering과도 관계가 있음. * 이 전압은 제품 하나 하나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생산과정에서 최적 세팅이 안되는데 서비스 모드에서 조정 가능함. 단, 서비스 모드에서 함부로 값을 바꾸면 원 상태로 돌아오기 어려울 수도 있으므로 원 세팅을 잘 기록해 놓을 것 정도의 얘기를 볼 수 있었다. AE-700은 신기종이므로 아직 이런 얘기를 찾기 어려웠는데, 다행히 AE-500의 서비스 모드 설정 방법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리모콘에서 메뉴키를 누르면 아래 좌상단 화면과 같이 메뉴 화면이 나타나고, 여기서 OPTION으로 들어간 후 OSD가 선택된 상태에서 ENTER를 오래 누르면 좌하단의 “EXT OPTION"이라는 메뉴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FLICKER ADJ"를 누르면 우하단과 같이 녹색 화면이 껌벅거리면서 나타난다. 처음엔 “DESK"라는 글자가 뒤집혀 나타났지만 상향 커서키를 누르니까 “CEILING"이라는 글자가 바로 나온다 (프로젝터가 천정에 뒤집혀 설치되어 있음). 여기서 좌우 커서키를 누르니 화면의 껌벅거리는 정도가 바뀌면서 숫자가 바뀐다. 처음엔 이 숫자가 24였는데, 1E까지 줄이니 거의 껌벅거리지 않았고, 다시 MENU를 눌러 원래 영화 화면으로 돌아오니 vertical banding도 꽤 줄어들어 있었다.

조정한 이후의 사진도 찍었지만, 자동 노출/화이트밸런스로 놓고 포토샵에서 조절하려 하니 잘 안되어서 여기선 차이가 두드러져보이지 않지만 아뭏튼 vertical banding이 별로 문제 안될 정도까진 줄어 들었다 (아래 사진에선 실제보다 banding이 조금 더 과장되어 보인다).

Vertical banding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기 때문에, 좀 더 비싸더라도 친구가 삼성 DLP 프로젝터를 추천할 때 그걸 살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제 받은 I, Robot을 보는 동안 한번도 vertical banding이 눈에 띄진 않아서 그냥 잊고 있기로 했다. 사실 이런 기기를 업그레이드할 때엔 여러 게시판도 들락거리고 제품마다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얼마를 투자하면 얼마나 향상될 것인지 여러가지로 신경쓰게 되지만 일단 사고 나면 그런 것 가능한 빨리 잊어버리고 한동안 그냥 즐기는 것이 상책이다. 옛날에 버스를 타고 가면서 기사 아저씨가 작게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감동받으면서 깨달았던 것은 음질과 감동은 별개일 수 있다는 것. 지난 일주일 동안을 돌이켜보면, 새 프로젝터를 설치하고 처음 몇 시간 동안은 더 커진 와이드 화면 만으로도 감동적이었지만 이 후 S-Video의 인터레이스 모드에 의한 텍스쳐 현상, vertical banding 등에 신경이 쓰여서 오히려 이전 프로젝터로 영화를 볼 때보다도 더 영화의 감흥을 느낄 수 없었고 머리속엔 온통 DVD 플레이어를 DVI와 업스케일이 되는 모델로 업그레이드할지, HD 셋탑박스를 살지 하는 생각만 들어 있었다. 하지만 사실 지금도 웬만한 극장 못지않은 화면을 볼 수 있고 어차피 공중파 방송을 별로 보지 않는 내겐 HD 셋탑박스가 있어봐야 일년에 몇 번, 추석이나 구정 연휴 때에나 효과를 볼 수 있을터였다. 그래서 몇해 전 홈씨어터 꾸미고 나서 몇달 전까지 그랬듯이 다시 한동안은 영화 내용에만 관심을 두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