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Improvement

옛날에 한동안 무척 재밌게 보던 TV 시리즈가 있었다. 원제는 “Home Improvement“인데, 우리나라에선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방영되었던 것 같다 (생각난 김에 지금 찾아봤더니 곧 시즌 1이 DVD로 나온다. 아마존의 wish list에 추가!) Home improvement TV 시리즈는 재밌게 봤지만 정작 나나 와이프나 모두 집안 일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었다. 주5일 근무를 시작하면서는 시간이 없지 않았지만 그런 일에 시간을 쓴다는 것이 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고, 뭣보다도 안하던 일을 하려니 귀찮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던 내가 몇 주 전부터 주말마다 home improvement를 하느라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는데, 사실 그 발단은 소위 “업글병"이었다. 지하실을 개조하여 서재 겸 home theater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몇 년동안 잘 써온 프로젝터에 슬슬 불만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시작. 내가 보는 컨텐트는 90%가 16:9 와이드 포맷인데, 4:3인 프로젝터에선 위아래 잘리고 (상대적으로) 좁은 화면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 답답했다. TV프로만 크게 보면 뭣하랴. 정작 크게 보고 싶은 컨텐트는 모두 와이드인데. 그래서 요즘 값이 많이 내린 와이드형 프로젝터로 업그레이드하기로 맘을 먹었다. AV 관련 사업을 하는 친구에게 알아봤더니, 최신 모델을 시중가보다 좀 싸게 구해줄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이 모델은 내가 지금 사용 중인 것 보다 투사 거리가 더 짧아서, 우리 방의 크기에서도 와이드 90인치 스크린을 채울 수 있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당연히 스크린도 바꿔야 하는데 친구 말로는 요즘 LCD 프로젝터에는 컨트라스트비를 높일 수 있는 회색 계통의 스크린을 많이 쓴다고 한다. 여기서 한가지 걱정이 생겼다. 화면이 커지고 스크린이 회색으로 되면 당연히 화면이 어두워질텐데, 지금의 방에서는 낮에 차광이 완전히 되지 않는다는 점.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마침 완전 차광할 수 있는 블라인드가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 주문한 지 며칠만에 받아서 설치했는데, 새 블라인드를 설치하고 보니 창틀이 맘에 들지 않았다. 사실 몇년 전에 AV룸 만든다고 방을 대폭 뜯어고쳤을 때 불만인 점이 딱 두가지 있었는데 창틀과 문의 색깔이 방 전체 색깔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녹색이라는 것. 그래서 집에 있던 원목 무늬 접착 시트를 한번 써보기로 했다. 옛날에 한두번 써보고 본격적으로 사용해보는 것은 처음이라 잘 될지 자신이 없었지만, 웬걸, 붙여놓고 보니 그럴싸했다. 조금만 멀리서 보면 감쪽같다. 어차피 블라인드로 가려 놓는 경우가 많았기에 창문 안쪽은 별로 보이지 않았지만 창틀이 눈에 거슬렸는데 이 부분은 거의 완벽하게 해결 되었다. 처음 시트를 붙이기 시작할 때에는 웬 쓸데 없는 짓이냐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와이프도 결과를 보더니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여자들이 칭찬해주면 고무되어 한 술 더뜨는 것이 모든 남자들의 본성인지라, 내친 김에 역시 맘에 들지 않던 문에도 붙여보기로 결심했다. 주말에 킴스클럽에 가서 원목 무늬 시트지를 더 사다가 문짝에 붙이기 시작했는데,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넓은 면적에 주름지지 않게 붙이는 것도 어려웠지만 문틀의 굴곡을 따라 붙이는 것도 어려웠다. 결국 초기에 약간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두 주에 걸쳐 고생한 끝에 그런대로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걸 어제 (10/16 토요일) 오전에 다 붙여놓고 잠시 쉬려하니 주문해놨던 와이드 스크린이 배달되었다. 업체 게시판에 갸냘픈 여자 둘이 가뿐이 설치했다는 얘기가 올라와 있길래 별로 걱정하지 않고 주문한 물건이었는데 스크린 원단을 잡아당겨 고정시키는데 엄청 힘이 들었다 (윗 글에서 “몹시 우락부락 할거라 짐작하시겠지만^^ 저 조그맣고 날씬한편입니다"라는 말이 안 믿어짐). 칠순이 넘은 아버지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힘들게 스크린을 조립한 후 햄머 드릴로 콘크리트 벽을 뚫고 플라스틱 앙카(?)를 고정한 후 나사못을 박아 스크린을 걸었는데, 벽이 굴곡이 좀 있어 스크린 아래쪽이 뜬다. 고심 끝에 PC 슬롯 구멍 막는 철판을 자르고 굽혀 Z자 모양으로 만들어 벽에 고정 (이런 걸 어떻게 여자가…). 암튼 달아놓고 보니 예전 4:3 스크린보다 더 극장 분위기가 났다. 친구가 LCD 프로젝터엔 아무래도 회색 스크린이 낫다고 할 때 사실 반신 반의했었다. 물론 어두운 부분이 더 어두워지겠지만 밝은 부분도 같은 비율로 어두워질텐데 눈이 잠깐만 적응하면 상대 밝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괜히 화면이 전체적으로 어두워만 지는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선입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무래도 컨트라스트비가 좋아진 것 같다 (물론 같은 프로젝터에서). 이제 주문해 놓은 프로젝터만 받아 설치하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