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배급 체계의 새로운 시도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함과 동시에 인터넷과 DVD로도 출시한다. 이러한 시도는 물론 관련 업계의 많은 논란을 불러올 것이고, 상업적으로 성공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일단 바람직한 방향의 시도라고 생각한다. 관객과 영화제작사 모두에게 말이다. 굳이 iTunes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적절한 가격에 좋은 품질의 컨텐트를 이용하기 쉽게 제공하면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유료 서비스가 공짜/불법 P2P보다 더 쓰기 불편하고, 새로운 컨텐트가 더 늦게 올라오고, 구입한 컨텐트의 활용에도 제약이 훨씬 많다면 과연 이걸 외면하는 소비자들만을 비난할 수 있을까? 컨텐트 권리자와 여러 이해 관계자들이 DRM과 같은 기술적 디테일을 갖고 시간을 끄는 동안 소비자들은 점점 불법, 공짜 컨텐트를 이용하는 것이 익숙해져만 간다. 사실, DRM은 완벽할 필요가 없다. iTunes로 다운로드받은 음악은 비록 DRM에 의해 보호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걸 (아무런 보호장치가 없는) 오디오 CD로 구울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주변 사람들이 네트웍으로 공유할 수도 있다. 이런 걸 못하게 해봤자 어차피 오디오 출력쪽에서 capture해버리면 막을 방법이 없는데 기존 미디어에서 허용되던 것을 굳이 막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VCR이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비디오가 불법으로 복사 유통되었던 것이 이후 별로 문제되지 않을 정도로까지 된 것은 매크로비전 때문이 아니라 저렴한 가격에 가까운 비디오샵에서 빌려다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DVD의 지역코드만큼 멍청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역별로 영화 상영 일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수십년전 클래식 영화에 대해서까지도 습관적으로 지역코드 제한을 함으로써, 비록 소수이지만 영화 매니아들이 자국에서 출시되지 않는 영화를 외국으로부터 사 볼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 어차피 DVD 지역 코드가 유명무실하게 되었고 오히려 불법 컨텐트를 보는 구실만 강화해주고 있는 지금 왜 이걸 그만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 누군가 용감하게 “이제 우리회사의 DVD의 지역코드는 모두 0으로 합시다"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일까? 기업이란 경제 논리에 의해 움직이며,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임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기술의 진보가 사람들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혜택을 시대에 뒤떨어진 논리와 폐쇄적인 이해 관계 집단의 담합으로 차단하면서도 제방의 구멍이 점점 커지는 것을 보고만 있기 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맞는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을 만들어내고 필요하면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다른 사업 파트너를 설득하거나 원가를 절감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창조하는 것 역시 기업의 몫일 수 밖에 없고, 이런 점에서 “Don’t be evil"을 내세우는 구글, 혹은 매력적인 상품을 낮은 가격에 공급하는 애플과 같은 기업이 기업 가치를 키우면서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물론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는지, 고민이라도 진지하게 해보았는지 많은 기업들에게 되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