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문화코드는 생존
얼마 전부터 정기 구독하는 책이 하나 더 늘었다.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고등학교 동기가 전화를 해서 요즘 동문회는 왜 잘 안나오냐, 누구 누구는 만나냐 등 얘기를 건네더니만 자기가 신문사에 있는데 주간지 하나 정기 구독해달라고 했다. 안그래도 너무 이공계 글만 많이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평소에 갖고 있었기에 선뜻 그러겠다고 했는데 나중에 회사 사람들하고 얘기하다보니 잡지 팔기 위해 요즘 많이들 쓰는 수법이라고 했다.
오랫만에 정치, 사회적 성향이 강한 잡지를 보니 예전 생각이 났다. 특히 “안기부가 나를 재판했다”와 같은 글을 읽으면서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다 지난 날의 얘기다. 민주화되고 심지어는 정부가 권위까지 잃었다고 하는 요즘에는 이런 일이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는 것 아닌가.
요즘 읽고 있는 책 중에 “컬처코드"라는 책이 있다. 언젠가부터 책 하나를 끝까지 읽 지 않고 자꾸 다른 책을 읽기 시작하는 안좋은 습관이 생겼는데 컬처코드 역시 그래서 마무리하고 있지 못하는 책 중의 하나. 이런 류의 책들은 대개 첫 한두 챕터는 재밌는데 그 뒤로는 그 얘기가 그 얘기인 것 같아서 흥미가 떨어져버린다. 아뭏튼 이 책에서 미국과 유럽의 문화 코드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데 좀 과장되고 전형화시켜버린 감이 없지 않으나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는 얘기들이기도 했다. 읽다 보니 우리나라 문화의 코드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의 코드는 “생존"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에선 무슨 일이건 “생존"의 문제일 뿐더러 “생존"이 걸린 일이라면 뭐든지 용서되기도 한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 부터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아온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내가 고3이 되었을 때 하신 말씀이 “죽지 않을 만큼만 공부해라"였고 나중에 동생이 고3이 되니까 “죽었다 하고 공부해라"고 하셨다. 또 웬만한 일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데"라고 하면 용서되기도 한다. 이런 문화의 장점은 뭐든 열심히 해서 이뤄낸다는 것이지만 단점은 “생존"의 코드가 정의나 법규보다 상위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과거 옳지 못한 일에 관여했던 안기부나 사법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먹고 살자고 했던 일이라던가 자신의 생존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할 것이다. 그 시절에도 그런 일 안하고, 욕심내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과연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독재 권력은 미얀마 같은 후진국의 얘기일 뿐일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번의 삼성 비자금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단지 권력이 정권에서 재벌로 넘어간 것은 아닌지. 기업인들의 항변은 한결같다: “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다 그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