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는 가치

며칠 전, 음반 업계와 IT 미디어에 계시는 몇 분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DRM등 요즘 디지털 음악 서비스 쪽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들을 논의한 후의 자리였기 때문에 음악과 관련된 얘기가 자연스럽게 주된 대화 내용이 되었다.  음반 시장이 얼마나 축소되었고, 몇몇 음악 서비스사는 음반사와의 합의도 없이 맘대로 음악을 판매하는데도 어떻게 할 수도 없다는 등의 얘기도 나왔으나, 또 한가지 다들 공감했던 얘기는 예전에 비해 음악의, 또는 음악을 듣는 가치가 얼마나 떨어졌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주로 클래식을 듣기 때문에, 요즘 대중음악이 예전만 못하다던가 하는 것은 잘 모르겠으나 똑같은 음악이라도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많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어렵게 구한 음반의 포장을 조심스레 뜯어서 거실 오디오에 올려놓고 집중해서 듣는 것과, 어디서 한꺼번에 잔뜩 구한 MP3 파일 중 하나를 PC에서 클릭해서 듣는 것은 많이 다를 수 밖에 없다. 클래식 음악과 오디오를 좋아하셨던 아버지 덕에 어려서도 음악을 접할 기회는 많았으나 “또 뭔가 시끄럽게 틀어놓으셨구나"하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어느 중학교 여름방학 때, 클래식 음악의 감상문을 10개인가 적어내어야 하는 방학 숙제를 하느라 집에 있는 (당시는 LP)음반 재킷 뒷면의 설명을 읽고 적당히 요약했던 적이 있었다. 음악은 듣지도 않고 감상문을 다 적어내고 난 후, 갑자기 궁금해졌다 - 정말 그 음악을 들으면 적혀있던 것 같은 느낌이 들까?  이렇게 해서 듣게 된 음악은, 아버지가 틀어놓으신 것을 그냥 지나가면서 듣던 것과 많이 달랐고 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듣게 되었다. 얼마 전 구입한 오디오 디바이스 덕에, 꽤 오랫만에 PC 스피커나 헤드폰이 아니라, 차나 지하철 안이 아니라, 소파에 앉아서 큰 스피커로 음악을 들어보게 되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한시간씩 앉아서 음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멀티태스킹하는 것이 워낙 습관이 되어서이기도 했지만, 예전엔 음악을 들으면서 음반 재킷 뒷면의 해설도 읽고 했었는데, 디지털 음악을 듣다 보니 손에는 리모콘밖에 없었고, 눈은 오디오의 스펙트럼 디스플레이 밖에 볼 것이 없었다. 백만 곡을 순간적으로 검색해서 들을 수 있으나, 음악을 체험하는 가치는 예전보다 못하게 되었다. 요즘 회사에서 음악 서비스의 고객 가치를 대폭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여러 사람들과 많은 논의를 하고 있다.  지금 MP3로 음악을 듣는 것이 자판기 커피 뽑아 먹는 정도의 가치밖에 주지 못하게 되어버렸다면, 스타벅스와 같은 가치를 주는 음악 서비스는 어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