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izon의 망개방
우리나라 이통사들 못지않게 폐쇄적인 정책을 펴오던 미국의 Verizon Wireless사가 최소한의 규격을 만족하는 디바이스와 애플리케이션에게 망을 개방하겠다 고 선언한 것은 iPhone을 위시한 스마트폰 시장의 급속한 성장, 구글의 Android 와 700MHz 스펙트럼 경매 참여, 아마존의 Kindle과 같은 디바이스의 CDMA망 활용 등 최근의 이동통신망 개방과 관련된 일련의 변화를 가장 확정적으로 보여준다. OHA 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던 Verizon이기 때문에 이번 발표의 진의나 유효성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쨌거나 미국의 빅3중의 하나, 그 중에서도 가장 폐쇄적이었던 이통사가 이와 같은 개방 정책을 선언한 것을 보면 이제 적어도 미국에서는 이동통신망의 개방이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았다고 보여진다. 이동통신사가 “pipe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것은 최근의 여러 상황에 떠밀린 감은 있으나 한편으로는 현명한 것이기도 하다. 자신들이 깔아놓은 망에서 다른 회사가 돈버는 것을 봐줄 수가 없어서 직접 컨텐트 장사를 해보겠다고 덥볐던 시도 중 패킷 요금으로 벌어들인 돈을 제하고 나면 그다지 이익을 남기는 것이 없다. 망을 개방해도 패킷 요금은 여전히 자신들의 것이라는 점과 무리한 독점적 사업 추구가 이용자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end-to-end로 다 하겠다(고는 해도 뭐든지 외주업체 시켜서 하는 것이지만)는 것보다는 어떻게 자신들만이 갖고 있는 망 자원의 총체적인 부가가치를 높일지를 고민해야 한다. 예전에 국내 모 이통사의 컨텐트 사업 전반을 기획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현재 데이터 망의 용량대비 이용률이 어느 정도냐? 다시 말해서 망이 많이 놀기 때문에 뭐라도 팔아야 하는 상황이냐 또는 여유가 별로 없어서 한정된 망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패킷당 이익이 많이 남는 서비스의 비중을 높여야 하는 상황이냐”
고 물어본 적이 있다. 이통사의 망 자원은 국가로부터 배정받은, 이통사의 가장 근본적인 자원이면서 유선망과 달리 용량확대도 어렵고, 또 매 순간 사용하지 않으면 그냥 날아가버리는 그런 자원이다. 그런데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린 그런 것 모른다. 뭐든 팔리는 것 있으면 팔고, 용량이 부족하면 그건 기술쪽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라는 것이었다.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 망자원의 유한성이나 이를 확대하기 위한 비용에 대한 감이 없다는 점에 매우 놀랐었다. 그런 점에서 컨텐트 사업 매출에서 패킷 요금 부분을 분리하고, 자사 컨텐트 사업과 병행하여 망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개방화를 추구하는 근래의 정책은 비록 때늦은 감은 있으나 옳은 방향으로 보인다. 여기에 미국의 망 개방 추세가 간접적으로나마 영향을 미치게 되면, 우리나라에서도 몇년내로 망 개방 및 이동 통신망의 다양한 활용이 지금보다 많이 진전되지 않을까. 이렇게 되면 지금 이통사를 통해 매출을 올리고 있는 무선 인터넷 업계는 과도기적으로는 고전할 수도 있으나 결국 무선 인터넷이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부가가치는 커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