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산업혁명》을 읽고
“우주산업혁명"이 최선의 번역이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제목이 잠재고객의 30%는 까먹었을 것 같다.
책은 우주비행의 비용 문제, 산업화 가능성과 같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로부터 시작한다. 가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으나, 저자 로버트 주브린의 박식함과 열정이 배어나는 대부분의 내용은 흥미진진하고 공감되었다. 일론 머스크와 스페이스X와 관련된 부분을 읽으면서 폰 브라운의 기술, 머스크의 자금, 케네디의 리더십을 갖지 않고도 한 개인이 인류의 역사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흔히 복잡한 기계는 생명체에, 산업 공급망과 시장은 생태계에 비유된다. 하지만 본질적인 차이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기계에만 해당하는 R&D 비용과 규모의 경제성이다. 주브린은 단지 기술적으로 무엇이 가능한지, 어떻게 최적화할 수 있는지를 넘어 어떻게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는지 설명한다. 책만 읽었다면 너무 긍정적인 측면만 보여준다고 생각했겠지만, 이 책이 쓰여진 후 스페이스X가 해낸 일을 보면 오히려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읽힌다. 주브린의 ‘마스 다이렉트’ 계획은 얼마 전 다시 읽었던 《마션》을 떠올렸다. 찾아보니 역시나 위어가 《마션》을 쓸 때 ‘마스 다이렉트’를 거의 그대로 참조했다는 인터뷰 기사가 나온다. 전문적 지식과 비전을 가진 전문가가 현실성 있는 계획을 제시하면 정부 기관의 계획에 반영이 되고, 작가는 재미있는 스토리를 입혀 대중에게 알리며, 사업가는 자금과 사업모델을 더해 그 계획을 현실화해 간다. 이런 모습을 보며 다음 세대는 함께 미래를 꿈꾸고 노력에 동참한다. 얼마나 이상적인 역할의 분담이며 선순환 구조인가. 유명한 과학자들이 현실적 문제는 무시하고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며 아무 얘기나 무책임하게 던질 때 위화감을 느끼곤 했었는데, 내게는 주브린처럼 기술적, 경제적 측면까지 고려하는 사상가가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주브린도 현실적 한계 내에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책은 후반으로 가면서 점점 과감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읽는 내내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이 떠올랐다. 우주비행과 AI라는 출발점은 다르지만, 인류가 태양계를 넘어 끝없이 광활한 우주로 진출해야 한다는 주장은 거의 같은데 물리학자와 엔지니어의 차이가 드러난다. ‘왜’라는 측면에서 테그마크는 “의식이 있는 존재가 우리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우리 우주에서 (생물적 또는 인공적인) 의식을 유지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에 비해 주브린은 “지식을 얻고 도전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생존을 보장하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와 같은 보다 실용적인 이유를 이유로 제시한다.
어느 쪽이건 우리가 우주로 진출해서 그 기회를 차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마찬가지다. 현실적으로 다른 지적 문명이 관측되지 않는 상황에서 무리 없는 주장인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나는 태양계를 넘어 별들의 세계로 우리가 퍼져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볼 때, 한편으로는 가슴이 벅차오르지만 또 한편으로는 혹시 이 용감하고 숭고한 비전이 단지 진화의 과정에서 갖게 된 번식 본능을 멋지게 포장한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단지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저 빈 공간을 다 독차지해버려도 될까? 항성 간 여행은 어렵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어렵다. 만약 이 우주가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튜닝된 것이라면 (장기간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별, 끝없이 다양한 조합이 가능한 분자 등), 그리고 그러한 튜닝이 우리에게 부여된 목적을 암시한다면 (‘네가 태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주로 진출해라!’), 어쩌면 그 튜닝은 동시에 생명체들이 각자의 태양계에 머물러야 한다는 규칙을 시사하는 것은 아닐까?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 흥미로운 책이었다. 다만, AI만도 못한 번역의 품질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킨들 버전을 추가로 구입해 함께 읽었다. 역자와 출판사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책 번역해서 출간해 봐야 많이 팔리지도 않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에 무관심한 우리나라 풍토를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 정부에서 양질의 과학기술 서적 출간(번역 포함)에 더 많은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고, LLM에 의한 자동번역으로 e-book 형태로라도 더 많은 책이 번역 출간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