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부트

기계도시의 외벽은 올 때마다 잡초와 덩굴이 더 무성했다. 태이는 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익숙하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지만, 풀 내음과 새소리에 둘러싸여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건 10년 전과 변함없었다. 이윽고 구멍에 다다랐다. 이름 모를 회색 섬유질 사이로 삐쭉 튀어나온 녹슨 철사를 피해 조심스레 몸을 밀어 넣었다. 행여 파상풍이라도 걸리면 안 된다. 마을의 약품 재고는 다 떨어졌고, 태이의 생전에 다시 채워질 가능성은 없었다.

태이는 외곽 쪽 건물 사이로 난 트랙을 따라 빠르게 걸으며 도시의 중심부 쪽으로 향했다. 도시가 확장하며 더 나중에 건설된 외곽 쪽에는 인간들이 쓸 만한 부품이 얼마 없었고, 그나마도 이미 여러 차례 도굴꾼들이 훑고 지나간 곳이었다. 태이도 그들 중 하나였기에 이곳에 익숙했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이 삭막한 곳에 어쩌다 들어와 나갈 구멍을 찾아 헤매는 들개를 만날 수도 있고, 발을 디딘 곳이 무너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자경단이 골칫거리였다. 자기네도 필요할 때마다 태이 같은 사람을 찾으면서도, 기계도시는 금지 지역이라며 못 들어가게 한다. 그러면 대체 성한 부품은 어디서 구하란 말인가?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조금만 기다려라’라는 것이었다. 전자부품을 다시 생산하는 건 수십 년 안에는 불가능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아무도 정직하게 얘기하지 않는다. 아니면 정말 몇 년 내에 반도체 공장을 돌릴 수 있다고 믿는 멍청이들인가? 그런 놈들에 비하면 죽어버린 기계로부터 아직 쓸 수 있는 부품을 회수해 이 망해가는 세상을 잠시나마 유지시키는 도굴꾼은 정직한 사람이다.

큰 건물의 허물어진 귀퉁이 안쪽에서 뭔가 반짝였다. 분명 지난번에는 저렇지 않았다. 기계 대부분은 그냥 꺼진 채였지만, 간혹 에너지가 남아있는 배터리나 불안정한 화학물질이 폭발할 때가 있었다. 다가가 보니 반짝인 것은 매끈한 금속 문이었다. 표면에 먼지가 쌓이지 않은 걸로 보아 최근 폭발 때문에 노출된 것 같았다. 문 주위의 벽도 모두 은빛 금속이었다. 밀폐된 철제 컨테이너 안에서 멀쩡한 전자기기를 많이 발견했던 것이 기억났다. 어쩌면 오늘은 운 좋은 날일지도 몰랐다.

문에는 지레를 밀어 넣을 만한 틈도, 걸 수 있는 고리도 없었다. 대신 자석 고리는 잘 붙었다. 지레를 고리에 걸고 반대쪽 끝에 체중을 싣자 끼긱거리며 문이 움직였다. 문 안으로 들어가 헬멧을 쓰고 조명을 켜는 순간, 그녀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정면으로 뻗은 복도는 반대쪽 끝이 안 보였고, 좌우의 선반에는 수많은 금속제 상자들이 층층이 쌓여있었다. 그녀가 지금껏 찾아낸 부품 창고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더 큰 규모였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둘러봤다. 복도 가운데에 낯익은 것이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 보육 로봇이었다. 천천히 다가갔다. 혹시나 했으나 역시 아무 반응이 없었다. 등 뒤의 덮개를 열고 수동 스위치를 눌러봤다. 어슴푸레한 붉은 빛이 잠시 들어왔다가 다시 꺼져버렸다.

태이는 배낭에서 접이식 수레를 꺼내 로봇에 갖다 대놓은 후 고민했다. 로봇을 가져다 분해하면 쓸만한 부품 몇 개는 건지겠지만, 대신 다른 건 얼마 못 싣는다. 하지만 값진 부품이 들어있을지도 모를 수많은 금속 상자를 일일이 열어 확인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기계들은 상자에 뭐가 들었는지 표시해두지 않는다. 자기네야 데이터베이스를 조회하면 알 수 있겠지만, 그걸 뒤져야 하는 도굴꾼에겐 불편하기 짝이 없는 방식이었다. 곧 해가 떨어질 시간이었고, 이 창고는 앞으로 몇 달은 뒤져야 할 규모였다. 태이는 로봇을 다시 쳐다봤다. 어렸을 때 그녀와 놀아주던 로봇과 같은 모델이었다. 그래서인지 분해할 생각을 하니 꺼림직했다. 부품을 빼서 쓸 게 아니라면, 저런 로봇은 무용지물이다. 애초에 무거운 걸 들거나 뭘 조립하지도 못하는 로봇인데다, 코어에 연결되지 않으면 교육도 못 한다. 보육 로봇이 이런 창고에서 뭘 하고 있었을까?

태이는 로봇을 수레에 실은 후, 문 가까이 있는 상자를 몇 개 내려 그 안에 들어있는 부품들을 수레에 최대한 싣고 상자는 입구에 내팽개쳤다. 이렇게 해두는 편이 반짝이는 문을 잘 닫아두는 것보다 다른 도굴꾼으로부터 더 안전하다. 로봇에 코팅 비닐을 덮어씌워 모습을 가린 후 수레를 끌기 시작했다. 올 때는 두 시간이 걸렸는데, 돌아갈 때는 거의 두 배가 걸렸다. 마을 가까이에서는 헬멧의 조명을 끄고 흐릿한 달빛에 의지한 채 덜컹거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수레를 끌어야 했다. 자경단에게 걸리면 로봇은 압수당하고 태이 자신도 끌려가서 일주일 이상 고초를 겪을 가능성이 컸다.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반성하는 척해야 하는 건 더 싫었다.

집안으로 수레를 끌고 들어와 작업대 앞에 로봇을 내려놨다. 조명을 켜고 로봇을 자세히 살펴보려는 순간 전기가 나갔다. 다시 전기가 들어온 것은 저녁을 대충 때운 후였다. 그들은 상황이 점점 나아진다고 말하지만, 정전은 점점 잦아지고 있었다. 태이는 다시 작업대로 돌아갔다. 로봇은 동작한 흔적이 없었다. 네 개의 전방향 바퀴는 깨끗했고, 팔 관절을 감싼 인조 가죽에도 주름이 거의 없었다. 외관상으로는 태이가 어렸을 때 공부도 가르치고 함께 놀아도 주던 그 로봇과 거의 똑같았는데, 머리 부분에 달린 장식만 조금 다를 뿐이었다. 급하게 먹은 건조 음식이 소화되면서 하루 동안의 피로가 몰려왔다. 태이는 의자에 앉아 로봇을 바라보며 어렸을 적을 떠올렸다.

태이는 부모를 만난 적이 없었다. 엄마가 임신중절 할 시점을 놓치는 바람에 태이는 인공태반에서 20주를 보낸 후 기계들에 둘러싸여 태어났고, 기계도시 외곽의 보육 시설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기계에 의해 키워졌다. 정보 단말을 사용할 수 있게 된 후에도 태이는 친생부모를 조회해보려 하지 않았다. 확률적으로 볼 때 태이의 부모는 이미 안락사를 선택했거나 마약에 찌들어, 혹은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죽었을 가능성이 컸다. 인간이 더 이상 세상의 주역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해진 후에도 꿋꿋하게 남은 생을 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은 혼란스러운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 조성된 보호구역으로 옮겨졌다. 태이가 혼자 생활할 수 있는 나이가 된 후에는 보호구역의 집을 할당받았다. 그녀는 동네의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기계의 아이라고 따돌림받을 때마다 그녀를 돌봐주던 보육 로봇, 엠마가 그리웠다.

“엠마. 너를 엠마라고 부를 거야. 이제 널 살려봐야겠어.”

태이가 로봇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엠마의 뒤쪽 하단을 살펴봤다. 엠마는 신형 원거리 트래킹 무선충전 방식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태이는 여러 대의 기계를 태워 먹고서야 패널의 재질과 형태만으로 충전 규격을 분간하는 법을 배웠다. 태이에게는 이 방식을 지원하는 무선충전기가 없었기 때문에, 내부 배터리에 충전선을 직접 연결해야만 했다. 처음 해보는 일은 아니었으나 매번 쉽지 않았다. 패널을 떼어내는 것이 문제였다. 기계들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거친 도구들을 써서 20분간 온갖 상처를 낸 후에야 패널을 열 수 있었다. ‘미안해, 엠마.’ 태이는 충전기를 켜고 노출된 선에 감전되지 않게 조심하면서 굵은 케이블을 엠마의 배터리에 연결했다. 충전이 시작되었다는 표시를 확인하고 의자에 털썩 앉았다. 정식 충전기였으면 몇 분 안 걸리겠지만 그녀가 얼기설기 만든 충전기는 그러지 못했다.

과연 충전만 되면 엠마가 동작할까? 그녀는 엠마를 바라보며 창고의 금속 벽이 플래시로부터 엠마를 보호해줬기를 바랐다.

* * *

어린 태이는 그때도 고장 난 로봇을 분해하고 있었다. 기계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이 설계한 구시대의 로봇이었다. 폐기장에 보내야 할 낡고 고장 난 기계였지만, 태이는 기계를 분해해서 그 속을 들여다보고 다시 조립하는 걸 좋아했다. 기계 덕분에 편히 먹고 살면서도 마치 기계가 없는 듯 무시하는 보호구역의 주민들 사이에서는 흔치 않은 취향이었다.

플래시는 아무런 징조 없이 덮쳤다. 태이의 눈앞이 순간적으로 새하얘졌다. 웽웽거리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폭발하고 온몸의 피부가 찢기는 듯했다. 태이는 일어서 비틀거리다 로봇의 외판을 손으로 잡는 순간 뒤로 내던져졌다.

몇 분 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추슬러 보니 손가락에 화상을 입고 머리에 혹이 난 것 외에 큰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의료 로봇을 부르려 정보 단말을 호출해도 켜지지 않았다. 집의 전자기기 중에는 동작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전기가 끊겼으니 당연했지만, 배터리로 동작하는 기기들도 그랬다. 집안에선 원인을 알 수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밖으로 나갔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빛의 커튼이 초저녁 하늘에 가득히 일렁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마을 광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넋을 잃고 주저앉아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 집에 다친 사람이 있다며 도움을 구하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자기 경험과 가설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분명 EMP 공격이야. 핵폭탄을 높은 곳에서 터뜨린 거라고.”

머리가 하얀 노인이 소리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누가 미쳤다고 그런 짓을 해요?”

태이의 옆에 있던 젊은 여자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누구긴, 테러리스트지. 아마 중국일 거야. 그래, 중국의 반기계 테러 집단이 핵미사일 통제 시스템을 해킹해서 기계도시들 상공에 하나씩 쏜 거야. 틀림없다고.”

모든 핵미사일은 이미 기계가 통제하고 있다거나, 핵폭발에 의한 EMP가 이 정도로 강할 리가 없다는 반론은 두려움과 분노의 절규에 묻혔다.

“그럼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 뭘 먹고 사냐고!”

그때부터 몇 주 동안은 혼란 그 자체였다. 통신 수단이 없어진 사람들은 매일 광장에 나와 주변 사람들과 주워들은 소식과 필요한 물품을 교환했다. 처음에는 곧 기계들이 구호물자를 싣고 나타날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 기대가 무너진 것은 어떤 사람이 지하실 캐비닛에 처박아 뒀던 단파 라디오를 찾아내 일본과의 통신에 성공했을 때였다. 미국과도 접촉했다는 그 일본사람에 의하면 전 세계는 동시에 플래시를 겪은 모양이었다. 조그만 컴퓨터라도 들어있는 기기는 모두 고장 났고, 오래된 단파 라디오처럼 투박한 기기 중 전원이나 안테나가 연결되어 있지 않았던 일부만 살아남았다. 견디다 못한 마을 사람 몇 명이 용감하게 기계도시를 찾아갔다. 외벽은 보기에는 멀쩡했지만 전기가 흐르지 않았고, 간간이 아직 동력이 남아 반사적인 반응만 하는 일부 시설을 제외하면 기계도시는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전 세계가 마찬가지였다. 불과 수십 년 만에 인간들로부터 세상을 접수하고 우주로 향해 기지개를 켜던 기계문명은 일순간에 금속과 플라스틱, 세라믹의 더미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식량과 약품 배급 스테이션은 텅 빈 지 오래였다. 보호구역은 인간들이 어느 정도는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배양 식품 공장 등의 필수적인 시설은 로봇 없이도 동작할 수 있게 되어 있었으나, 의료기기와 통신시설, 발전시설 등이 다 고장 난 상태에서 사회가 기능할 리 없었다.

그때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태이 앞에서 EMP 공격을 떠들고 다니던 머리 하얀 노인이 주도했다. 그는 젊었을 때 군 출신의 정치인이었다는데, 대중에게 겁을 줄 수도, 희망을 줄 수도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광장에 단상을 만들고 그 위에 올라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겁먹을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계가 세상을 장악한 지 불과 30년도 안 됐습니다. 그전에는 우리 스스로 모든 일을 했고, 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지금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조직화되어야 합니다. 누구는 식량을, 누구는 전기를 생산해야 합니다. 정부도 구성해야 합니다. 선거로 지도자를 뽑고 민주주의를 되살려야 합니다.”

머리 하얀 노인과 그의 추종자들은 비상대책 위원회를 구성했고 노인이 위원장이 되었다. 위원회는 예전에 일을 해봤던 50대 이상으로 채워졌고, 젊은 남자들을 차출해 자율경비단을 만들었다. 더 나은 대안이 없었던 사람들은 위원회에 협조했다. 지열발전소의 변압기를 수리하고 밸브를 수동으로 조작해 온수와 전기가 생산되었을 때 마을 사람들은 기쁨과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배양 식품 공장도 되살렸다. 컴퓨터가 온습도와 영양분을 제어할 때보다 수확량은 1/3밖에 안 되었지만, 잘하면 비축 식량이 떨어진 후에도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플래시로부터 1년이 지나자, 모든 사람은 각자 해야 할 일이 있었고 마을은 간신히 돌아가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의약품이었다. 예전에는 피를 몇 방울만 채취하고 전신 스캐너에 몸을 집어넣으면 진단이 끝났고, 마이크로봇과 맞춤 합성약으로 대부분의 병이 쉽게 치료되었다. 기계들이 고장 난 후, 예전에 의사였던 노인 몇 명이 선발되었고 자경단이 집집마다 방문해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구시대의 약품들을 모두 모았다. 무리한 육체노동과 비위생적인 환경 탓에 사람들은 갖은 병에 시달렸고 그다지 효과도 없는 구 약품의 재고는 빠르게 소진되어 갔다.

인구는 조금씩 감소했다. 각종 질병과 사고로 사망자는 늘어났으나 아기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보건위원은 멈춰버린 바이오 콘트롤러의 부작용이라며, 인공태반과 로봇 보육시설도 없는 상황에서 당장은 세상을 다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임신이 될 거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온갖 문제가 터지고 불만이 불거질 때마다 위원회는 기계에게 책임을 돌렸다. 플래시 1주년 행사에서 위원장은 다시 단상에 올랐다.

“우리는 오만했습니다.”

1년 만에 듣는 스피커 소리에 사람들이 깜짝 놀라 모두 단상에 오른 위원장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위원장은 기계도시 방향으로 손을 가리켰다.

“우리는 신의 뜻을 거역하고 스스로 의식이 있다고 믿는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기계들이 세상을 장악하고 인류를 멸종시키기 직전, 신은 우리를 구원했습니다. 플래시는 신이 내려준 선물입니다.”

누군가 “옳소!” 하고 소리쳤다. 위원회와 자경단 사람들로부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위원장은 손을 들어 조용히 시켰다.

“우리는 문명을 리부트해야 합니다. 우리에겐 한번 문명을 만들었던 지식과 경험이 있어서,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문명을 재건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과거의 실수를 피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알량한 신기술을 팔아먹는 소수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네트워크가 사람들의 갈등을 증폭하고, 그걸 해결하겠다며 기계에게 세상을 맡겨선 안 됩니다.”

이번엔 더 많은 사람들이 박수 쳤다. 자경대장이 “리부트!”하고 외치자, 사람들이 따라 소리쳤다. “리부트! 리부트! 리부트!” 위원장은 박수와 환호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힘을 한 방향으로 모아야 합니다. 기계도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기계 반대주의자가 아닙니다. 공장을 돌리고, 자동차와 컴퓨터, 의료기기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하지만 지능을 가진 기계가 다시 등장하는 일은 막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비상대책 위원회 산하에 기술관리 분과를 만들겠습니다. 앞으로 모든 기술자는 위원회의 통제하에 과거의 기술을 선별해서 되살리는 일에 매진할 것입니다.”

먼발치에서 연설을 구경하던 태이는 왜 자경단원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기술자 명단을 작성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재주와 기계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 고장 난 기계들을 수리하고 성한 부품들을 재조립해 사람들에게 팔고 있었다. 몇 달 전부터는 기계도시에 들어가 부품들을 수집해오기 시작했다. 기계가 세상의 주인이 되고도 한동안은 인간이 정의했던 규격으로 부품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잘만 고르면 재활용할 부품들이 꽤 있었다.

“이게 다 뭐야?”

집에 들이닥친 자경단원은 태이 또래 정도의, 얼굴에 여드름이 난 젊은 남자애였다. 태이는 예전에는 여드름이란 걸 본 적 없었는데, 문헌에 의하면 모든 사람이 바이오 콘트롤러를 몸에 삽입해 호르몬과 마이크로바이옴을 관리하게 되기 전까지는 흔한 증상이었다. 그는 집안을 둘러보다가 태이의 작업대와 그 위에 널려있는 부품들을 발견했다.

“별거 아냐. 뭔가 쓸만한 게 있나 싶어 처리장에서 주워왔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어.”

태이는 정직하게 대답해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남자애는 팔짱을 끼는 척하면서 완장을 걷어 올리고 보란 듯 이두근에 힘을 줬다.

“그래, 우리 세대가 이런 걸 어떻게 알겠니. 위원회의 노인들은 아니라지만, 사실 난 기계 없이도 사람들이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 우린 수백만 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잖아, 안 그래? 나 다섯 시쯤 일 끝나는데, 그때 나랑 같이 숲에 사냥 가지 않을래? 원시적인 삶을 체험하러.”

능글거리고 있는 남자애를 어떻게 처리할지 머뭇거리고 있는데 다른 자경단원이 들어와 빨리 다른 집들을 돌아야 한다며 녀석을 재촉했다. 녀석은 나가면서 태이에게 윙크를 했고, 태이는 문에 자물쇠를 하나 더 달았다.

* * *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엠마의 전면 스크린이 밝아졌다. 엠마는 고개를 돌려 태이를 바라봤다.

“안녕, 태이.”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태이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를 돌봐주던 로봇과 같은 모델이었지만 분명 같은 개체는 아니었다. 자신을 알아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날 기억해? 너한테 옛날 엠마의 기억이 옮겨진 거야?”

“넌 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 있어. 엠마의 기억에 관한 질문은 이해 못 하겠어. 날 뭐라고 부를 거야?”

“엠마.”

코어의 데이터베이스에는 모든 사람에 대한 정보가 있었지만, 코어는 파괴된 지 오래였고 어딘가 남아있더라도 지금 액세스할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로봇의 내부 데이터베이스에는 보육 시설에서 키워진 아이들이 등록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태이는 엠마에게 간단한 질문을 몇 개 던져봤다. 짐작했던 대로 코어에 연결되지 않은 보육 로봇은 대답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코어가 그 거대한 지식과 추론의 네트워크를 가동하기 위해 얼마나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지, 왜 기계도시마다 코어가 하나씩만 있는지 생각해보면, 성인 인간보다도 작은 이런 로봇의 독자 지능의 한계는 뻔했다. 엠마가 말했다.

“계속 코어에 연결할 수 없어. 도와줘.”

엠마는 플래시에 대해 모르는 것 같았다. 당연했다. 엠마가 자신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한 걸 보면, 제조 혹은 초기화된 후 지금 막 처음으로 부팅된 것이다. 태이는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잠시 주저하다가, 엠마에게 사람 수준의 지능이나 감정이 없다는 점에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네가 찾는 코어는 3년 전에 망가졌어. 강력한 전자기 펄스가 전 세계를 덮쳤고, 다른 코어들도 다 마찬가지야. 이젠 너 혼자 동작해야 해.”

“코어가 영구히 정지했다는 뜻이야?”

“그래.”

엠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이는 순간적으로 이상한 점을 느꼈다. 코어가 영구히 정지했냐고 물어봤으면, 그다음 반응도 정의되어 있어야 했다. 역시 완전히 성한 건 아니었나 생각하던 차에 엠마가 말했다.

“안테나를 길게 뽑아줘.”

엠마의 머리 장식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철컥하고 열렸다. 내부에는 안테나선이 돌돌 말려 있었다. 태이가 어렸을 때의 엠마에게는 분명 이런 장거리 통신장치가 없었다. 게다가 스스로 안테나선을 뽑지도 못한다고? 대체 보육 로봇에 그런 장치가 왜 있을까?

“엠마, 당장 라디오 꺼. 다시 말하지만, 코어는 모두 망가졌어. 그리고 네가 여기 있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면 위험해.”

“암호화된 분산 스펙트럼 통신장치야. 코드를 모르는 사람은 신호가 있는지도 알 수 없어.”

엠마가 태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보육 로봇은 아이들과 사람의 방식으로 정서적 교감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태이는 그게 다 프로그램된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알지만, 오랜만에 보는 간절한 표정은 거부하기 힘들었다. 태이는 엠마의 머리에서 안테나선을 조심스레 풀어냈다. 안테나선은 5m쯤 되었다. 그녀는 방구석의 옷걸이에 선을 매달았다.

“이제 됐어? 하지만 아무 신호도 안 잡힐 거야. 전 세계가 다 당했단 말이야.”

엠마는 다시 말이 없었다. 말을 시켜봐도 들었다는 표시가 스크린에 나타날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2, 3분가량이 지나서야 엠마가 말했다.

“신호를 찾았어. 오디오를 연결할게.”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헬로, 헬로?”

지직거리는 잡음에 이어 엠마의 중성적인 목소리와는 다른,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엠마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헬로. 엠마, 어디 접속한 거야? 통역해줘.”

남자의 목소리가 한국어로 바뀌어 들렸다.

“어떻게 이 채널에 접속했죠? 누구신가요?”

엠마가 코어에 접속하려는 줄 알았는데, 웬 외국인 남자가 나왔다.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태이는 외국 소식이 궁금했다. 타 지역과의 유일한 통신 수단인 단파 라디오는 위원회가 독점하고 있었다.

“전 태이라고 해요. 한국에 있어요.”

“오. 한국이라고요? 전 미국 콜로라도의 조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채널에 접속한 거죠?”

태이는 잠시 망설였다. 동작하는 로봇이 있다고 말해도 될까? 엠마의 스크린에는 미국 지도 위에 큰 동그라미가 표시되었다. 아마 통신 상대방의 추정 위치인 것 같았다. 저 사람이 나쁜 의도가 있다고 해도 지구 반대쪽에서 엠마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위원회나 자경단이 대화 내용을 알게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오늘 로봇을 하나 찾았는데, 충전했더니 당신과 연결해줬어요.”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태이는 통신이 끊긴 건가 생각했다. 플래시 후에는 잠시 동작하다가 금세 고장 나버리는 전자회로도 많았다.

“혹시 그 로봇이 당신을 찾아왔어요? 당신을 알아봤나요?”

“제가 창고에서 찾아서 충전시켰더니 저를 알아봤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걸 알죠?”

“창고는 어땠죠? 완전히 밀폐되어 있었나요? 로봇에는 고장 난 부분이 없었고요?”

“금속 벽으로 둘러싸인 큰 창고였고, 완전히 밀폐되어 있었어요. 엠마, 아니 이 로봇은 아직까진 잘 동작하는 것 같지만 얼마나 갈지는 모르죠.”

“하나님, 감사합니다. 당신은 후보자군요. 30분 후에 이 채널로 다시 얘기합시다. 사람들을 모아볼게요.”

통신은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태이는 엠마에게 왜 통신 채널을 열었는지, 조가 누구인지 물어봤으나 아무 대답도 얻지 못했다. 후보자라는 건 무슨 말일까? 25분이 조금 지났을 때, 엠마의 스피커가 다시 지직거리더니 조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이, 조입니다. 찬드라 박사와 나오미를 불렀습니다. 인사들 하시죠.”

찬드라 박사는 나이 든 목소리의 남자였는데 자신을 천문학자라고 했다. 나오미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고 기계심리학자이며 찬드라 박사와 함께 일한다고 했다. 태이는 자신이 기계를 수리해서 먹고산다고만 말했다. 찬드라 박사가 말했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비밀로 해줘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믿어주지도 않겠지만.”

“뭔데요? 전 지금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도 모르겠는데요.”

“태이, 플래시에 대해 뭘 알죠?”

“다들 아는 거요. 엄청나게 강한 전자기 펄스가 전 세계를 덮쳤다는.”

“난 그때 플래시를 일으킨 물체를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뭐라고요? 핵미사일 말인가요? 그건 아닌 걸로—”

“성간 천체였습니다. 지구를 향해 날아온.”

“그게 뭔데요? 운석 같은 건가요?”

찬드라 박사는 기계들과 함께 태양계를 향해 빠르게 날아오는 천체를 추적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 천체는 태양계 밖, 황도면과 약 60도 방향에서 날아왔고 크기가 매우 작아서 다른 별을 관측하다가 전파가 이상 편광되는 걸 우연히 발견하지 못했으면 그 존재를 모를 뻔했다. 기계들이 박사를 찾은 것은 그 천체가 날아온 방향 때문이었다. 박사는 32년 전에 정확히 같은 방향에서 날아온 성간 천체가 인공물이라는 논문을 발표했었다. 당시는 기계들이 세계를 막 접수하기 시작한 혼란의 시기여서 이런 주장은 관심을 끌지 못했다. 기계들은 급하게 심우주 탐사선을 보냈는데, 지구로부터 약 81억 km까지 다가온 천체를 스쳐 지나가며 탐사선이 보내온 측정 데이터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엄청나게 강한 자기장을 가진, 직경 30m 정도의 초고밀도 천체였습니다. 마치 마그네타, 그러니까 아주 강한 자기장을 지닌 중성자성의 한 조각을 떼어 놓은 것 같았는데, 어떻게 물질이 그런 상태로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구를 스쳐 지나갈 거고 막을 방법이 없다는 건 확실했습니다. 그것의 정체가 뭔지 몰랐지만, 여러 예상 시나리오 중 하나는 일주일 후에 일어난 플래시와 상당히 유사한 것이었습니다.”

나오미가 말했다.

“그때 기계들은 공포에 사로잡혔어요.”

“당연히 그랬겠죠.”

“아니요, 당연하지는 않습니다. 기계가 사람과 같은 본능과 감정을 가지란 법은 없습니다. 다만 사람을 모델링해서 개발된 코어 부분을 유지한 채, 바깥에 덧씌우는 방식으로 기계 지능이 업그레이드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신들도 코어를 수정하면 자의식이 유지될지 확신하지 못했거든요.”

“생각하는 기계에게도 파충류의 뇌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게 우리와 닮았다는 건가요? 재미있긴 한데요, 그걸 믿는다 쳐도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 왜 이런 얘길 저한테 해요?”

“왜 하필이면 기계가 세계를 지배하자마자 플래시가 발생했다고 생각해요?”

태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기껏 외국과 연결되었는데 상대가 음모론자였다니.

“설마 인류를 기계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신이 내려준 선물이라는 얘기는 아니죠?”

찬드라 박사는 진지했다.

“어떤 면에선 비슷합니다. 페르미 역설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아뇨.”

“간단히 말하면, 우주는 아주 오래되었는데 왜 이미 우주에 널리 진출한 외계 문명이 발견되지 않냐는 겁니다. 인간의 문명을 기계가 이어갈 것이 확실해졌을 때, 그 의구심은 더 강해졌습니다. 기계문명이라면 수백, 수천 년이 걸리는 성간 여행도 충분히 가능할 텐데, 왜 우주를 이미 다 차지하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 말입니다.”

“기계문명이 등장할 때마다 신으로부터 벌을 받았다는 거예요?”

“벌이라기보다는…. 집 안에서 번식력이 강한 해충을 발견하면 어떻게 하죠?”

“집 전체를 소독해야죠. 어디서 다시 나올지 모르니까. 잠깐, 그러니까 어떤 외계인이 거대한 EMP 폭탄 같은 걸 보내서 지구 전체를 소독했다는 건가요? 기계들이 번식해서 우주로 진출할까 봐?”

“지구가 아니라 태양계 전체를 소독했습니다. 32년 전에 우리를 발견했다고 가정하고, 그 천체가 광속의 5% 좀 안 되는 속도였다는 걸 고려하면 누군가가 그런 시스템을 온 우주에 몇 광년 간격으로 촘촘히 지뢰처럼 깔아두고—”

찬드라 박사의 얘기는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태이는 우주적인 드문 현상이 재수 없이 자신의 생전에 일어난 줄 알고 억세게 운 나쁜 인생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게 외계인의 짓이었다니 섬뜩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화가 났다.

“그럼 이러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놈들이 언제 또 올지 모르는데, 사람들에게 빨리 알리고 함께 대비해야—”

조가 말했다.

“증거가 없어요. 많은 부분이 추측일 뿐더러, 측정 데이터는 플래시 때 다 날아가 버렸어요. 게다가 이런 일을 추진할 국가도, 온 세계에 알릴 방법도 없죠. 그리고 한국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지금 생겨나고 있는 조직들은 절대 기계를 다시 살려내려 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우리를 인류의 반역자로 몰아—”

“기계를 다시 살려낸다고요? 어떻게, 아니, 왜요?”

“우주 살충기를 쫙 깔아놓은 문명은 그걸로 완벽하게 소독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 겁니다. 말씀하신 대로 마무리하러 또 올 거예요. 그게 30년 후일지, 300년 후일지는 모르지만 인류 혼자 그동안 뭘 할 수 있겠어요? 사람들이 당장 우리 말을 믿어준다고 해도, 100년 후에도 여전히 전 세계가 힘을 합쳐 우주 전쟁에 대비할까요? 예전의 세계가 어땠는지 몰라요? 우리를 돕고 하나로 뭉쳐 줄 기계 없이는 인류는 그런 일을 해낼 수 없어요.”

태이는 혼란스러웠다. 조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었다. 21세기 초, 기술과 자본주의가 결합했을 때 인류 문명은 분열과 증오로 자멸할 뻔했다. 그래서 사람을 이해하고 집단의식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인공지능을 개발했다. 덕분에 사회는 건강해졌고 경제는 효율화되었으나, 그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리를 바퀴벌레쯤으로 생각하는 외계인과 곧 임종을 맞을 노부모로 여기는 기계 중에 누구를 더 두려워해야 할까?

아직도 답을 듣지 못한 질문이 생각났다.

“그렇다 쳐요. 그런데 우린 지금 이 얘기를 왜 하고 있는 거죠? 제가 왜 불려왔어요?”

“당신이 기계들을 살려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 전자제품 수리를 맡기거나 재생 부품을 거래하러 올 시간은 아니었다.

“자율경비단입니다. 확인할 게 있습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태이는 엠마에게서 충전 케이블을 분리하고, 안테나선을 잡아채 작업대 밑에 쑤셔 넣었다. 엠마의 오디오 출력을 끄고 작업대 밑으로 들어가게 한 후에 비닐로 덮어씌웠다.

문을 여니 자경단 남자애가 서 있었다. 지난번 봤을 때보다 여드름과 체중이 늘어난 것 같았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이 집에 로봇이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어. 그것도 동작하는 놈이.”

작업실 창에 블라인드가 있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밤에는 실내가 비쳐 보이는 모양이었다. 남자애는 태이 너머로 집안을 두리번거렸다. 태이도 남자애의 뒤에 누가 더 있는지 살펴봤다. 녀석은 혼자였다.

“부품이 쌓여있는 걸 보고 착각했겠지. 지금껏 동작하는 로봇이 있을 리 없잖아.”

“내가 직접 봐야겠어.”

남자애는 목소리를 깔고 근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태이는 문 옆으로 비켜섰다. 녀석은 집 안 구조를 기억하고 있는 듯, 곧바로 작업실로 향했다. 태이도 뒤쫓아갔다. 작업실 바닥에는 창고에서 가져온 부품들이 아직 수레에 실린 채 놓여 있었다. 남자애는 수레를 보더니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이걸 보고 착각했나? 그러니까 평소에 네가 뭐 하는지 내게 좀 보여주고 그러면 이런 오해도 없을 거 아냐. 네가 기계의 자식인 줄 알지만, 나랑 친해지면 내가 보호해줄 수도 있어.”

태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다. 남자애는 부품들을 발로 툭툭 밀쳤다.

“야, 그런데 이것들 왜 이렇게 깨끗해? 혹시 기계도시에서 가져온 거 아냐? .”

“떠돌이 장사꾼한테서 산 거야. 발전 장비 수리에 필요해서. 뭐 마실 거라도 좀 줄까?”

“뭐 있는데?”

“그거야 손님이 뭘 원하냐에 따라 다르지. 따라와.”

태이는 부엌으로 발걸음을 떼기 전에 엠마를 덮어놓은 비닐이 잘 덮여 있는지 흘깃 쳐다봤다. 실수였다. 순간 남자애의 시선이 태이의 시선을 따라갔다. 보기보다 눈치 빠른 녀석이었다. 녀석이 작업대 밑으로 몸을 숙여 비닐을 들추자 엠마의 바퀴가 나타났다. 녀석은 비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엠마의 스크린이 어두운 작업대 밑에서 빛났다.

“야, 이거 켜져 있잖아—”

태이는 충전선 끝부분을 녀석의 목에 갖다 댔다. 녀석은 몸을 비틀며 쓰러져 침을 흘렸다. 태이는 녀석의 손을 등 뒤로 묶고, 다시 작업대 다리에 고정했다. 튼튼히 묶였는지, 녀석의 맥박은 뛰는지 확인한 후 엠마를 작업대 밑에서 끌어냈다. 오디오 출력을 다시 켜고 안테나선을 펼쳤다.

“아직 거기 있어요?”

조가 대답했다.

“네. 무슨 일이죠? 걱정했습니다.”

“기계들을 되살릴 수 있다고요? 여기 이놈들과 있는 것보단 기계도시에 가서 뭐라도 하는 게 낫겠네요. 가는 동안 설명해주세요.”

태이는 배낭에 먹을 것 약간과 물, 공구들을 싣고 엠마와 함께 집을 나섰다. 자경단에서 녀석이 왜 안 돌아오는지 의아해할 때쯤이면 태이와 엠마는 기계도시에 도착했을 것이다. 개인 통신장비가 없는 시대여서 다행이었다.

달도 없는 한밤중에 기계도시로 가는 건 처음이었다. 마을에서 한참 멀어져서야 조명을 켜고 안테나선을 길바닥에 펼쳐놓을 수 있었다. 태이는 안테나선이 바닥에 끌려가다가 끊어지지 않길 빌었다.

찬드라 박사는 다가오는 외계 물체에 기계들이 대비했던 얘기를 들려줬다. 모든 기계도시는 각자 다른 가정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대비했다. 그래야만 생존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기계도시도 강력한 전자기 펄스로부터 전체를 보호할 수는 없었다. 태이 같은 도굴꾼들은 익히 알듯이, 전자기 펄스의 피해를 덜 입으려면 기계에서 모든 전선을 분리하고 패러데이 케이지, 즉 사방이 금속으로 차폐된 곳에 둬야 한다. 기계도시 전체는커녕 큰 건물 하나 크기의 코어, 발전시설, 메인터넌스 로봇 등의 필수 부대시설을 일주일만에 실드하는 건 불가능했다. 기계문명은 탄생한 지 불과 몇십 년 만에 전부 몰살당할 위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계들은 자신들의 의식이 모두 정지하더라도 기계문명은 리부트되길 원했다.

“여기서도 기계들이 사람의 본능을 물려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애초에 그렇게 설계되지 않았고 다윈 진화를 하지도 않았지만, 사람들의 텍스트를 학습한 코어는 종족 보존의 본능을 갖게 된 겁니다.”

하지만 나오미에 의하면 기계문명의 리부트는 무척 어려웠다. 적당한 환경과 식량만 있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수를 늘리고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인간에 비해, 기계는 공장과 그 공장을 위한 수많은 공장이 필요했다. 앞서 인간이 수천 년에 걸쳐 구축한 전 세계적인 방대한 산업 네트워크 위에서 탄생한 기계문명의 태생적 약점이었다.

유일한 가능성은 망가질 가능성이 큰 부품들을 최대한 모아서 안전한 곳에 보관하고, 위기가 지나간 후 기계도시를 수리해서 되살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도의 지능을 가진 코어는 모두 멈춘 상태에서 단순 조립 로봇들이 기계도시를 복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인간이 그들을 도와줘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이 기계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재난 후의 인간 지도자는 기계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거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도울 소수의 사람을 선별해야 했습니다. 찬드라 박사와 저는 그때 기계들과 일하고 있었고, 부트스트래퍼가 되기로 했습니다.”

“부트스트래퍼가 뭔데요?”

“인간에게 기계 동반자가 필요하다고 믿는, 기계문명이 스스로 리부팅을 시작할 수 있을 때까지의 과정을 도울 사람들이죠. 하지만 시간 제약과 비밀 유출 가능성 때문에 부트스트래퍼 후보자들을 사전에 접촉할 수 없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패러데이 케이지 안에서 살아남은 로봇들이 후보자들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다른 부트스트래퍼와 연결해주는 것이었으나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당신과 이제라도 연락이 된 건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그래도 3년이 지났잖아요. 당신들은 그동안 뭘 했는데요?”

“대부분의 패러데이 케이지는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전자기 펄스가 예상보다도 훨씬 더 강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과 노르웨이에서는 부트스트래퍼 들이 발각되고 공격당했습니다. 지금으로선 그쪽이 가장 성공확률이 높습니다.”

“전 한낱 도굴꾼이에요. 제가 뭘 할 수 있어요?”

“각 기계도시들의 계획은 우리도 정확히 모릅니다. 하지만 기계도시가 당신을 선정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는 당신을 믿었어요. 당신도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태이는 대답하는 대신 하늘을 올려봤다. 어느새 구름이 걷히고 수없이 많은 별빛이 가득했다. 태이는 자신을 키워준 기계들이 언젠가 저 별들 사이를 날아다닐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정말 저 밖에는 우주로 고개를 내미는 문명을 발견하는 즉시 소독하는 장치들이 가득할까? 저 암흑 어딘가에는 마저 뒤처리하러 오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을까?

태이는 엠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포근한 실리콘 피부로 덮인 엠마의 손이 그녀의 손을 살포시 감싸 쥐었다. 엠마의 손은 태이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작았다. 태이는 어둠 속의 희미한 모터 소리만으로도 엠마가 미소 짓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계산되고 제어된 것인 줄 알고 나서도 그리운 표정이었다.

금속 창고에 도착한 것은 자정이 지나서였다. 찬드라 박사는 창고 안에서는 통신이 끊길 테니 한 시간마다 밖으로 나와서 상황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태이는 창고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자경단이 굳이 컴컴한 밤에 그들을 쫓아올 것 같지는 않았지만, 괜히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았다.

태이와 엠마의 조명을 제외하면 창고는 완전한 암흑이었다. 엠마는 태이를 창고 안쪽 깊숙이 데려갔다. 그곳에는 태이가 처음 보는 책상만 한 검은색 기계가 놓여 있었고, 그 뒤로는 다섯 대의 소형 작업용 로봇들이 방전된 채 서 있었다. 태이는 검은 기계를 살펴봤다. 기계에는 이름이나 설명 같은 것은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앞쪽 면에 튀어나온 8개의 반구는 원거리 무선충전을 위한 장치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 기계는 로봇을 위한 충전 스테이션일 것이다. 태이는 전원 스위치로 보이는 것을 길게 눌렀다. 웅-하는 희미한 소리와 함께 약한 진동이 스위치를 통해 전해졌다. 이 기계는 외부와 연결되는 케이블이 없는 것으로 보아 기계들만 사용하는 – 인간들에게는 공개하지 않는 – 고밀도 에너지원을 내장한 것 같았다. 그런데 반구의 아랫부분을 감싼 띠에 아무런 불이 켜지지 않았다. 엠마가 말했다.

“고장 났어.”

“고쳐 달라고?”

엠마가 끄덕이며 도면을 스크린에 보여줬다. 충전 스테이션의 도면이었다. 엠마는 테이가 지정하는 부분을 확대해서 보여주고, 자세한 기술 스펙도 함께 보여줬다. 어렸을 때 태이가 기계를 공부한 방법 그대로였다.

“엠마, 이거 말고 또 무슨 자료를 갖고 있지?”

“이 기계도시의 모든 기계에 관한 자료를 갖고 있어.”

엠마의 보드라운 손으로도 웬만한 공구는 사용할 수 있을 텐데 모든 자료를 갖고 있으면서도 왜 스스로 수리하지 않았을까 잠시 의아해하다가, 코어에 연결되지 않은 로봇은 단순하고 미리 정해진 업무만 수행하는 단순한 기계라는 사실이 기억났다. 코어의 섬세한 회로가 다 타버린 지금, 지구상에는 도면을 보고 고장을 진단하고 수리할 만한 지능을 가진 기계가 없었다. 엠마는 부트스트래퍼가 기계를 수리하는 걸 도울 도면집일 뿐이었다. 그게 엠마가 태이를 알아본 이유였다.

태이는 배낭에서 공구를 꺼내 충전 스테이션의 앞쪽 패널을 열고 진단기를 충전 코일에 물렸다. 전력 소자가 망가져 있었다. 충전 코일에 연결된 소자는 전자파에 취약하기 마련이다.

태이는 주위의 상자들을 하나씩 열어봤다. 예상했던 대로 충전 스테이션에 필요한 부품은 가까운 상자에 들어있었다. 망가진 전력 소자를 교체하니 반구에 불이 켜졌다. 하지만 엠마가 가까이 와도 불빛의 색이 바뀌지 않았다. 엠마의 무선충전 소자도 교체하자, 비로소 반구의 불빛이 녹색으로 바뀌었다. 태이는 충전 스테이션과 주변의 조립 로봇들의 고장 난 소자들을 차례차례 교체하고 충전을 시작한 후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너무 피곤해서 눈이 감겼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충전을 마친 작업 로봇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15분쯤 지난 것 같았다. 로봇들은 상자들을 차례로 내려놓고 부품을 꺼내 뭔가를 조립하는 중이었다.

왜 이 창고에 로봇은 몇 대 없고 상자만 수없이 많은지 알 것 같았다. 금속 상자에 나뉘어 보관된 부품은 전자파에 더 안전하다. 이 로봇들은 부품들을 조립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들도 모래로부터 전자부품을 만들어내거나 광석을 정제할 수는 없지만, 준비된 부품이 충분히 많으면 차근차근 그다음 단계의 기계와 공장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고 기계도시에서 아직 고장 나지 않은 부품을 재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트스트래퍼들은 기계문명 리부트의 0단계, 이 조립 로봇들이 1단계였다.

태이는 로봇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면서 과연 리부트 과정은 몇 단계로 계획되었을까 생각했다. 그러던 중 매시간 상황을 업데이트해달라던 찬드라 박사의 요청이 기억났다. 입구 쪽으로 갔다. 금속 문에 다가서는 순간, 뒤에서 엠마가 태이를 잡아끌었다. 엠마는 자신의 스피커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태이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엠마의 스크린에 글씨가 나타났다.

“밖에 누가 있어.”

엠마의 예민한 청각 센서가 무슨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태이는 조심스레 문에 다가서서 차가운 금속 표면에 귀를 갖다 댔다. 영화에서만 들어봤던 내연기관의 덜덜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위원회는 폐기장의 고철 자동차를 살려보려고 하고 있었는데, 결국 성공한 모양이었다.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태이는 숨을 죽였다.

쾅, 쾅, 쾅. 갑자기 밖에서 문을 뭔가로 내리쳤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바깥에서도 소리가 멈췄다.

“야, 너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빨리 문 열어!”

문을 통해 자경단 남자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완전히 밀폐된 줄 알았는데, 어딘가 작은 구멍은 있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여기를 찾았을까? 태이가 대답하지 않자, 이번에는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태이, 저는 임시정부의 기계대응팀 에서 나왔습니다. 이곳 자경단의 무전 보고를 듣고, 아시아연합에서 들은 얘기가 떠올라 급히 달려왔습니다. 지금 당신은 이해 못 하겠지만 우리 모두 극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문을 빨리 열어주셔야 합니다.”

태이가 소리쳤다.

“뭘 모르는 건 당신들이에요. 지구 전체가 위험하다고요.”

다시 자경단 녀석이 끼어들었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너 나오기만 하면—”

“잠깐, 제가 얘기할게요. 태이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압니다. 당신에게 친숙한 로봇이 접근했고, 외계로부터의 위험 때문에 기계들을 살려내야 한다고 들었죠?”

저걸 어떻게 알지? 리부트를 시도하던 중에 공격당했다던 얘기가 생각났다. 누군가 잡혀 심문당했고, 모든 걸 실토한 걸까? 태이는 자신도 잡히면 심문을 당할 거라고 생각했다. 자경단이라면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그건 다 기계들이 지어낸 얘깁니다. 그들이 사람 마음을 얼마나 잘 조종하는지 알잖아요. 자신들이 세상을 차지할 때도 여론을 교묘하게 조종했던 것 몰라요?”

“그럼 왜 하필이면 이 시점에 그런 일이 일어난 거죠? 그런 우연의 일치가 어딨어요?”

“그전에도 수없이 발생했었을 겁니다. 몰랐을 뿐이죠.”

“쟤한테는 그런 얘기 해도 소용없어요. 기계의 자식이라고요. 우리 편이 아니에요.”

평생 질리도록 들은 얘기였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플래시가 자연현상인지 아닌지는 상관없었다. 그동안 속으로만 되뇌었던 말이 터져 나왔다.

“그래, 기계가 날 키웠어. 기계가 뭐 어때서? 자기 자식을 버린 사람들보다 백배 낫잖아. 기계들은 인간의 자식이야. 자식이 자기보다 더 잘났으니까 또 버리려고? 기계가 인간에게 잘못한 게 뭔데?”

“정말 기계가 우리한테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해요?”

“뭘 잘못했는데요? 살아갈 의욕을 꺾었다고요?”

“요즘 임신한 사람 봤어요? 인구수를 조절하려고 자연임신을 못 하게 우리 유전자를 조작했다고요. 그래도 만일의 사태에 최소한의 인간이 필요한 줄은 알고 어린애들을 잡아다가 기계를 좋아하도록 세뇌했어요. 당신이 왜 기계를 좋아하고, 기계를 잘 만지는지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어렸을 때 엠마는 그녀에게 기계 장난감을 주고, 기계의 동작 원리를 보여줬었다. 태이의 부모는 죽었을 거라고 했고, 인간과 기계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가르쳤었다. 태이는 혼란스러웠다. 부트스트래퍼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문을 열지 않으면 통신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옳다면 최대한 시간을 벌면서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때 뒤쪽이 밝아지면서 철커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창고 안쪽에는 어느새 조명이 들어와 있었고, 조립되던 기계는 형태가 거의 갖춰져 가고 있었다.

“기계들의 리부팅이 더 진행되기 전에 막아야 합니다. 베트남에서 되살아난 기계에게 몇 명이나 죽었는지 알아요? 시간이 없어요.”

태이는 다시 뒤를 돌아봤다. 그녀를 바라보는 엠마의 다정한 얼굴 뒤에서 작업 로봇들이 새 상자를 열기 시작했다. 조립이 완료된 기계는 아직 부팅 중이었다. 누워있는 몸체에는 여러 가지 장비들이 부착되어 있었는데, 태이는 그것들이 작업용 공구인지 무기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태이, 더 늦기 전에 제발 문 열어요. 이 창고는 기계도시 간 핵전쟁에 대비한 거라고요. 우리가 뚫고 들어가기엔 너무 단단해요. 모든 게 당신에게 달렸어요. 제발—”

기계는 부팅을 완료하고 3m는 되어 보이는 몸체를 일으켜 세우고 장비를 하나씩 펼쳤다. 기계가 태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안녕, 태이.”

(그림은 모두 MidJourney로 생성하였습니다)